일본이 과거사 사과를 해서는 안되는 이유 쿄겐


▲여혐 치사량


재미있는 글을 하나 발견해서 옮겨적어본다. 2013년 11월에 나온 글로써 그 당시 한창 정상회담 안한다고, 야스쿠니 참배했다고 난리칠 때 얘기다.

1. 들어가며

최근 동북아에서 지도자들의 행동 덕분에 역사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에 일본 고위관료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었고 오사카 시장은 2차대전 당시 일본군들의 인권탄압에 대해 옹호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반면 한국에서 박근혜는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일본이 역사를 다루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박근혜의 전임자 역시 사과를 요구했다. 한국과 중국은 대사관들을 소환하고 정상회담을 취소하고 도쿄의 전범행위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을 가했다. 그들은 일본이 과거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것은 지역적 협력에 장애가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뿐만이 아니라 동북아 국가들이 깨달아야되는 것은 사과를 하는 것은 화해의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2차대전 후 프랑스와 독일의 협력은 사과의 힘을 보여준 것으로 흔히 생각된다. 하지만 이들은 서독이 과거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때에 화해를 한 것이다. 독일이 이른바 "사과"를 한 것은 프랑스와 독일이 이미 화해를 한 후 협력을 가속화할 때 나온 것이다.

비슷하게 일본과 미국 역시 사과 없이 2차대전으로부터 성공적으로 졸업했다. 

반면 동북아에서 일본의 이웃들은 일본을 못미더워한다. 도쿄에서 나온 과거 각종 과거사 사과는 항상 "부족하다느니" "지나치게 늦다느니" 식으로 까인다. 덧붙여 이들은 일본 수정주의자들의 공격 역시 불러일으킨다. 2005년에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 사태가 일어났을 때 공교롭게도 중국에서 폭동이 일어나 일본제 차와 기업들을 공격했다.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단골소재로 우려먹는다. 

심지어는 일본의 해외 평화유지군 파병마저 이들로부터 군국주의라고 까인다. 

2. 사과의 해악

(주: 여기서 인정과 사과는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주의하기 바란다.)

덧붙여 사과는 외교관계에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1990년대에 2차대전 50주년으로 일본정부는 각종 사과를 해왔고, 1995년 의회에서는 일본의 이웃들에게 끼친 해악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많은 일본 보수들은 이를 비판하면서 왜 일본이 사과를 해야하느냐 내지 한국이 합방을 환영했다느니 등등의 얘기를 했다. 예상대로 일본의 이웃들은 이에 대해 들고 일어났다.

설령 사과가 필요하지도 도움이 되지도 않을 지라도 국가적 화해는 사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웃국가들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서독은 독일의 잔학행위를 인정했다. (이스라엘에게 1952년 배상한 것을 보듯). 미국과 일본 역시 서로 잔학행위를 인정했다. 2010년에 히로시마를 방문했던 미국 대사관 John Roos는 전시 일본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일본의 이웃들은 왜 이렇게 사죄에 목을 메고 있을까? 많은 이들은 정치적 사과을 립서비스로 폄훼한다. 하지만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미래의 행동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전쟁 총동원을 하려했던 국가들은 과거에 대한 민족주의적 열기를 고취하려 들었다. 그들은 "적국"의 과거 폭력을 교육시키고 그들의 폭력은 정당화시키지 않았는가?

반면 과거 잔학행위에 대한 "인정"은 평화적 외교에 대한 제스쳐다. 인권에 대한 국가의 시그널을 보내고 다른 인간의 고통에 대한 존중을 표명한다.

3. 일본 vs 독일

동북아 사람들은 왜 일본이 과거를 직시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들을 독일과 비교하려든다. 뭐가 일본과 독일을 다르게 만든단 말인가? 

해답은 일본이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이 아니라 일본이야말로 표준을 대표하는 국가다. 독일의 놀라울 정도의 사죄야말로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과거 잔학행위를 다루는 대신 전사한 장병 추모하기를 선호한다. 그리고 도쿄 뿐만이 아니라 워싱턴, 런던, 테헤란, 텔 아비브 등등 모든 곳에서 사과를 하라는 것을 반대한다.

많은 이들은 일본이 1960년대 중반 서독의 스텝을 밟아야한다고 주문한다. 이 모델에 의하면 독일은 박물관과 추모시설을 건립했고 서독은 역사의 어두운 면을 가르치고, 독일의 피해자들에게 자주 디테일 있는 사과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와 다른 독일 모델이 있다. 바로 1950년대에 아데나워가 만든 모델로서 이는 일본에게 더 유망해보인다. 아데나워 하 서독은 독일의 잔학행위를 인정했지만 그 대신 서독의 전후 업적들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접근이야말로 서독과 프랑스의 협력을 불러일으켰다. 일본과 다른 국가들은 국가주의적 반발을 방지하고자 아데나워 모델을 따라야한다: 부정과 회개 사이의 더 안전한 중간지대기 때문이다.

4. 역사

많은 일제의 정책을 혹독했다. 일본 제국 전체에서 많은 여성들은 유인과 취업사기 등으로 위안부로, 혹은 정부의 강제로 정신대에 가 일해야했다.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원주민들을 탄압하거나 심지어 징집하기까지 했다. 731부대는 중국 포로들과 시민들을 상대로 각종 실험을 자행했다. 

최근 60년 간 해당 이벤트들에 대한 일본의 기억은 지대하게 발전했다. 전쟁이 끝난 처음에 일본 지도자들은 그들의 식민주의가 아시아를 근대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그들의 경제적 발전을 찬양하고 대신 잔학행위를 가렸다. 그들은 미국과 다른 연합군 세력과 싸웠던 "태평양전쟁"을 강조했다. 이는 즉 아시아 대륙에서 일어났던 것을 가리고 원자폭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이 과거 피해국가들과 외교를 정상화하면서 이들에게 "명시적 사과"를 보내기 시작한다. 외교상 시이나 에츠사부로는 1965년 한일회담에서 사과를 표명했다. 그리고 기계적인 사과였더라도 당시 한국인들은 이를 환영했다. 그리고 1970년대 리처드 닉슨의 대중 외교와 맞물려 도쿄 역시 중국에게 각종 유감을 표명했고 베이징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후 수십년 간 역사가 계속해서 일본 외교의 도마에 올라가 있는만큼 일본 역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화해적 제스쳐를 취했다. 가령 1980년대에 일본역사교과서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을 때 당시 수상이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이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일본의 진정한 자각은 1990년대에 일어났다.


1989년 히로히토의 사망과 2차대전 50주년 기념 각종 전쟁 관련 행사들로 인해 기억에 변화가 일어났다. 일본인 지도자들은 이 때부터 놀라울 정도의 사과를 했다. 1993년에 호소카와 모리히로 수상은 20세기 초반 한국인들에 대한 폭력을 얘기하며 깊이 반성하고 마음으로부터 사과를 드린다 했다. 무라야마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마저 여러 번 사과를 했으며 고이즈미는 아예 서울의 과거 일본 감옥을 둘러보며 독립군 추모시설에 화환까지 바쳤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일본 교과서는 일본 식민지배에 대해 더 많이 다루기 시작했고 일본 정부는 위안부에 대해 어느 정도 사과를 표명하려 했다. 그러나 일본인 지도자들이 과거에 대해 사과를 하려들면 들수록 많은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이 트렌드를 비판했다. 나카소네의 1980년대 교과서 논란은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마사유키 후지오가 "일본의 1910년 합병은 한국의 책임이다."라는 발언을 하도록 만들었다.

의회에서 사과를 결의하려 했을 때 많은 이들은 이를 거부하거나 일본의 폭력까지 미화하곤 했다. 그리고 이 반응은 역사가 알렉시스 더든이 일본의 "수백만달러 규모의 거부 산업"이라고 정의한다. 일본 교과서들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다루면 다룰 수록 보수적 지식인들은 일본 과거의 더 긍정적 요소를 다루려 들기 때문이다. 일본의 "진보"는 수정주의적 교과서를 쓰려 하지 않지만 대중들에게 있어 "기분이 좋은" 역사는 거부감이 없다. 

5. 이웃증오

이런 거부는 일본 외교에서 역사 문제를 만들었다. 한국 지도자들은 일본의 과거사가 해당 두 국가의 화해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승만은 1951년에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게 우리가 제일 필요한 것은 과거사에 대한 회개고 미래를 위해 우리와 공평한 협약을 맺는 것." 박정희 (흔히 친일적이었다 일컬어지지만) 역시 이 의견에 공감을 했으며 한국의 협조에 일본의 유감이 우선시 된다 못을 박았다. 2001년 김대중은 일본이 역사를 직시해야된다 얘기했다. 

그리고 2차 대전 후 한국인들은 일본의 군사적강국화를 우려했다. 옛날부터 한국 지도자들은 미국이 일본을 재무장시키지 말아달라 사정했다. 그리고 대중 역시 이를 따랐다. 1982년 조사를 보면 10%의 한국인들만 일본이 우호적 국가라 얘기했다. 요즘에도 한국인들의 40~60%가 일본이야말로 한국의 다음 안보위협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언젠가는 국경을 맞대게 될 수 있는 독재 거대국가인 중국의 부상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아보인다

일본의 역사문제는 외교관계에 해악을 가하고 있다. 2005년 김삼훈은 일본이 이웃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에 세계 지도자 (UN 안보리)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했다. 이는 한국인들이 미일 안보동맹을 일본의 통제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도록 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교과서 문제로 인해 일본과 북핵문제를 협상할 때 대사관을 본국 소환하기까지 했다.

6. 아데나워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이 독일의 전철을 밟아야한다고 한다. 그들이 간과하는 것은 전후 서독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아주 다른 두 가지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반면 동독은 공산주의에 대한 나치의 폭력만 강조했고 유태인학살은 정당화했으며 이스라엘을 악마화시켰으니 세번째 방식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아데나워는 독일의 폭력을 "인정"했다. 1951년 의회에서 아데나워는 독일인들이 "독일 내 유태인들과 점령지에 가해진 고통"을 알고 있으며 도덕적, 물질적 배상이 필요하다했다.

1950년대 이후 독일은 배상정책은 외국에 거주하던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아데나워의 통치 동안 서독의 유명리더들은 독일의 잔학행위를 변호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데나워 모델은 추후 서독에서 보이던 "회개"와는 달랐다. 교과서는 현대역사를 거의 다 다루지 않았고 전쟁의 모든 책임은 히틀러에게 돌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군 역시 홀로코스트에서 막대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군인이 아니라 SS만 잘못했다는 역사왜곡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나레이션은 독일의 고통을 오히려 강조했다: 동유럽에서의 독일인 청소와 소련에서의 독일 포로 학대, 그리고 소련 침공의 잔학성 등등 말이다. 전쟁 기념은 불편할 지 몰라도 "기념되지 않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서독과 프랑스는 놀라울 정도의 협력을 이뤄냈다. 프랑스 지식인 알프레드 그로서는 1944년만 해도 프랑스인들이 독일 빼고 적이 없다 생각했지만 1960년에는 독일 빼고 친구가 없다고 본다 했다. 독일의 패배 후 불과 20년만에 프랑스는 서독이 프랑스의 가장 큰 친구라 주장했다. 연합군의 점령정책에서 그들이 독일의 과거사 인정에 가치를 매겼던 것은 확실하다. (역사왜곡과 민족주의 차단을 하려 했으니)

그러나 프랑스와 연합군들은 독일이 과거를 직시하려 하지 않을 때도 화해를 하려 들었다.

1960년대 후반에서야 서독인들은 과거사를 직시하려했다. 사민주의의 광풍 속 서독 나치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가 논의에 올라왔고, 스스로 피해자 취급을 하려했다. 독일은 홀로코스트 관련인들을 기소했고 배상정책을 확대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추모시설 건립은 물론이고 각종 행사를 열며 학생들에게 전쟁사를 배우는 것을 권유했다.

이 "변화"는 당연히 반발을 불러왔다.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히틀러의 부상 이후 태어난 독일인들은 나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못박았다. 바바리아의 프란츠 스트라우스는 독일인들이 무릎걸음에서 일어나 어깨를 펴야한다 주장했다. 알프레드 드레거는 독일인들이 히틀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평범하게 행동해야된다고 주장했다.

1983년에 보수들이 다시 정권을 잡은 뒤 이들은 다시 아데나워 모델을 추구하려 했다. 헬무트 콜은 독일의 과거 폭력에 대해 인정했지만 그는 동시에 그의 세대 독일인들이 "제때 맞춰" 태어났기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얘기했다. 콜은 서독의 NATO 연합군들과 공동추모를 했다.

이런 제스쳐는 전쟁의 참혹함만 강조했지 "독일"의 잔학행위를 강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들은 1985년 사죄를 지지했고, 수정주의적 사관을 반대했다. 1990년 통일에 대해 경계하던 마가렛 대처에게 많은 이들은 서독을 믿을 수 있다 건의했다. 그리고 독일의 통일 후 외국인들은 독일의 과거사 문제 관련 논쟁을 독일 민주주의의 증거로 제시했다.

7. 과거사

반면 일본은 독일만큼의 재미를 보지 못했다. 독일처럼 많은 일본인들도 공식사죄를 지지하고 정부에게 압력을 가했다. 사부로 이에나가는 역사교과서 검열에 대한 수십년 간의 법정싸움을 진행해왔고 위안부에 대한 데이터를 모은 요시아키 요시미 등등이 있다. 하지만 일본의 이 행각은 당연히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한 지도자의 사과는 다른 엘리트에 의해 통제되지 않은 채 취소된다.

그러나 일본의 이 유감스러운 행적은 놀라운 것도 아니고 특별한 것도 아니다. 거의 모든 세계에서 과거의 잔학행위는 양극화적인 정치논쟁을 가져온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전시 세대를 대표한 Jörg Haider가 자유당의 권력을 잡고 연립정부까지 구상했다. Haider의 "예전 세대를 좋게 보지 않는 세대는 나라를 말아먹는다."라는 것에 오스트리아인들이 찬성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1995년에 시라크가 홀로코스트 관련하여 프랑스에서 7만5천명 유태인을 추방시킨 것에 대한 사죄는 우익뿐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에게까지 까였다. 벨기에, 이탈리아, 스위스 등등 모든 나라에서 나치들과의 과거 협력을 쉬쉬하려 드는 것은 물론이다.

요크 대주교가 영국의 노예무역에 대해 국가적 사죄를 해야된다는 주장과 토니 블레어가 감자 대기근과 1972 피의 일요일 문제로 아일랜드에게 사죄를 하려 할 때 영국인들은 들고 일어났다. 미국에서는 1994년 히로시마 원폭의 참상이 스미스소니언에 전시되었을 때 미국 하원 의회에서 다시 미국의 원폭투하가 옳았다고 정치논쟁을 했고 상원에서는 해당 전시를 변경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그리고 국가의 과거사 사죄라는 게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골치가 아플 때 많은 이들은 왜 독일만 다를까라는 의문을 표할 것이다. 아마도 서독에서 유달리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당시 서독 외교정책의 한계가 지나치게 명백했기 때문이다. 냉전 당시 서독 보수세력들은 조용히해야할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두 가지 핵심 외교 목표인 독일 통일과 소련으로부터의 독일 방어는 나치 과거사 청산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서독 지도자들은 연합국들이 독일의 재무장과 통일에 대한 의심을 거두게 하기 위해서는 독일이 과거로부터 졸업했다는 것을 인지시켜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이들은 왜 일본이 할 수 없냐고 묻는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질문은 왜 독일이 할 수 있었냐?가 되겠다.

8. 일본의 아데나워 모델

이웃과 관계를 회복할 거면 일본은 아데나워 모델을 따라 과거를 인정하되 미래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그리고 일본 지도자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해야한다. 많은 일본인들이 얘기했듯이 일본 군인들은 새로운 신사에 모실 수 있거나 아니면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방문했던 치도리가후치 국립묘지에서 행사를 열어도 된다.

아시아 언론들은 일본에게 사죄하라고 녹음기처럼 반복한다. 그들은 수상과 "천황"이 1970년에 바르샤바에서 빌리 브란트가 그랬듯이 일본 피해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데나워 모델을 따라 일본은 절대로 일본 대중들의 양극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제스쳐, 의회의 공식적 사과나 결의안 등등,을 피해야한다. 이는 1990년대 후 감소하고 있는 일본 수정주의자들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일본 우익들은 이것이 일본의 애국주의에 해가 된다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아데나워 모델이 독일의 미래 비전과 전후 성과에 초점을 맞췄듯이 일본 역시 자랑스러워 할 것이 많다. 작은 땅과 부족한 자연자원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안정적이며 첨단테크놀로지와 창의성이 뛰어난 국가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일본의 이런 역사 거부 시도가 일어날 때마다 중국과는 달리 일본국내 많은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이 이를 세계에 노출해왔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일본의 아데나워 모델 추구는 아시아 외교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독일 간 관계회복이 프랑스의 협력 없이 일어나지 않았듯이 일본의 이웃 역시 "파트너"가 되기를 희망해야된다.

이는 한국에도 해당되고 당연히 논란이 클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몇몇 프랑스인들처럼 일본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한다고 울부짖을 것이다. (가령 1984년에 그로서는 진정한 반성을 위해 프랑스와 독일 지도자들이 전투지에서 만나지 말고 노동캠프에서 만났어야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소수의 일본 애국주의자들로부터의 반발 역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 행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남한의 지도자들은 더 이상 일본 과거사 선동으로 정부의 정당성을 확보해야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중국의 부상이 한국과 일본을 가깝게 할 수 있는 동력으로 이미 존재한다. 반면 중국과 일본의 화해는 별로 긍정적이지 않아보인다. 중국과 일본은 그들을 협력할 수 있게 하는 공통된 위협이 없고 오히려 일본이 중국을 견제해야할 지도 모른다.

또한 중국의 공산당은 자본주의의 도입 이후 내수 정치적 정당성을 위해 반일감정을 대대적으로 선동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중국 관련 논객들은 중국의 경제성장과 대만에 대한 클레임이 위협을 받을 경우, 중국 공산당이 정당성 유지를 위해 나치가 그랬듯이 국가주의와 외국인혐오증을 대대적으로 선동할 것이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마저 반일혐오증이 뿌리깊은 것은 아니다. 2차대전 직후 중국공산당은 대만을 악마화해야했기 때문에 일본에게는 오히려 "야만적 군국주의의 공통된 피해자"라며 협력적이었다. 이는 일본을 미국으로부터 떼내기 위한 제스쳐였다. 그리고 이렇게 볼 때 중국은 프랑스처럼 과거를 뒤로 놓을 의사가 있었다.

반일광풍이 몰아친 것은 수십년 후 중국공산당이 국가주의의 필요성을 느껴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일본에 대해 더 막 나가지 못하는 것은 간단하다. 일본을 공격하는 것은 중국 내부에서 자행되고 있는 역사왜곡과 중국인들의 국가주의 고취에 시선을 모으기 때문이다.

9. 결론
이상적으로 국가들은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이런 종류의 행위들이 불러일으킬 반발들은 협력에 지나치게 큰 장애가 된다. 그러니 더 나은 방법은 사과 대신 "인정"만 하고 미래를 보는 것이다. 일본은 서독이 후에 오퍼했던 극단적 모델 대신 아데나워 모델을 추구하는 스탠스를 취함으로써 이웃과 더 나은 관계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더 일찍 하면 할 수록 전세계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덧글

  • 피그말리온 2015/10/12 21:54 #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당한 식민지배 시기에 특별한 뭔가가 있기를 바라는 것도 같고요.
  • Oso 2015/10/13 00:22 #

    그 때 세계 돌아가던 이치는 제국주의였으니 지금 와서 지금 잣대로 뭐라 할 수도 없죠.. ㅠ
  • blackace 2015/10/12 22:04 #

    전설의 반성즙짤의 전설
  • Oso 2015/10/13 00:22 #

    ㄲㄲㄲㄲㄲ
  • ㅇㅇ 2015/10/12 22:18 # 삭제

    좋은 글 번역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Oso 2015/10/13 00:32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디스커스 2015/10/12 22:30 #

    이건 사건당사자는 형사합의 제도를 상당히 이용하지만, 사건을 보는 3자는 형사합의 제도를 극도로 혐오하는 반도의 행태가 떠오르게 하는군요.

    퉷.
  • Oso 2015/10/13 00:32 #

    ㅋㅋㅋㅋㅋ
  • 2015/10/12 22:32 # 삭제

    오랜만에 옵니다. ㅎㅎㅎ
    글 잘 읽었습니다.
    노벨상 2015에 대해서도 시간 나시면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히히히
  • Oso 2015/10/13 00:32 #

    네 다음 포스팅이 되겠습니다.
  • 2015/10/12 22:3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Oso 2015/10/13 00:32 #

    요즘 일본에 부는 혐한광풍도 8할은 한국이 자초한거죠.
  • ㅁㄴㅇㄹ 2015/10/12 22:56 # 삭제

    '어른들이 미안해'='사죄와 배상을 요구한다'
  • Oso 2015/10/13 00:33 #

    zzzzz
  • 존다리안 2015/10/12 23:02 #

    짱깨 공산당 놈들은 역시 더러운 놈들이었군요. 언제는 같이 제국주의 희생자라 떠벌리더니만....
    이딴 것들을 예전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사기당하기 전에는 관우나 장비같이 의리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냐며 믿었다는 걸 보면 우리나라는 이상할 정도로 중국 대상으로 나이브해지더라구요.
  • Oso 2015/10/13 00:33 #

    요즘 네이버 같은데 가면 중국 내부사정 소식 너무 많이 나오는데 도대체 여기가 반도인지 중국 조센성인지 혼란스럽습니다.
  • ㄴㄴ 2015/10/13 01:05 # 삭제

    고려자치구입니다
  • ㄴㄴ 2015/10/13 01:06 # 삭제

    종북애덜이 고려연방제를 부르짖은 이유가 뭘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ㅎ.. 대중화의 자치구를 말씀하신듯
  • 백범 2015/10/13 12:11 #

    중화인민공화국 조선성입죠. 뭐... ㅋ
  • KittyHawk 2015/10/12 23:14 #

    잘 읽었습니다.
  • Oso 2015/10/13 00:33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MoGo 2015/10/12 23:33 #

    확실히 일본이 좀 더 적극적으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한 후부터 더 시끄러워진 감도 있고 하지만서도.. 중요한 건 일본이 어떻게 나왔나가 아니라 일본을 악으로 상정하고 일본에 부역한 자들의 계보를 만들어 사상화하고 있는 쪽이 무제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현 상황이 아닐지.
  • Oso 2015/10/13 00:35 #

    글은 일본 외교 쪽이지만 내수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있으니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애당초 친일인명사전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보는 입장이고, 반도에서 반일이니 역사청산이니 하는 것은 그냥 6.25때 졸업했어야한 조리돌림 낙인찍기 마녀사냥밖에 안되죠.
  • Ongoing 2015/10/12 23:36 # 삭제

    독일이 왜 그럴 수 있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점이 특히 인상깊네요. 거칠게 보자면 뭐든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매끄러운 번역에 감사드립니다.
  • Oso 2015/10/13 00:35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uKigael 2015/10/13 00:41 #

    확실히 독일이 왜 그랬는가를 보지 않지요. 외교에서 한국이 무엇을 찾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고 생각할 때면 외교적인 시각이 대국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다만 일본의 미래는 어떨지 좀 그렇네요.. 지금 상황대로면 ' 나라도 아베를 뽑을 것 같다 ' 고
    생각하거든요..

    PS : 이건 좀 핀트가 엇나간 질문인데 교과서도 자유경쟁에 맡기는 편이 좋을까요?
  • Oso 2015/10/13 00:57 #

    시장 메카니즘이 돌아가지 못하게 가격 관련 각종 규제가 들어가있는게 의무교육과정 교과서고, 학생 선택권이 아니라 교사/교육부에서 골라주는 건데 원론적으로 자유경쟁에 맡긴다고 편향된 교과서가 도태될 수는 없죠.

    애당초 검정 찬성 논리로 그걸 대는 것자체가 궤변입니다.
  • 2015/10/13 01:54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Oso 2015/10/13 06:53 #

    오타 맞습니다. 고쳤습니다.
  • 채널 2nd™ 2015/10/13 02:06 #

    독일이 이중 플레이를 했다니 ... 나의 대독일은 이러지아 않아~~~~~ ;;;

    ((일본국에서도 사실상 투트랙 전략을 구사한다면 ㅎㅎ 제 2 한일 합방은 명약 관화하겠군요.))
  • Oso 2015/10/13 06:53 #

    ㅋㅋㅋㅋㅋㅋㅋ
  • 잡초맛잡채 2015/10/13 02:54 #

    오오 이 짤방은 반성즙 짤방 오오
  • Oso 2015/10/13 06:54 #

    뻘짓도 역대급 뻘짓이었죠 ㄲㄲ
  • 2015/10/13 09:2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10/13 10:4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Bluegazer 2015/10/13 09:29 #

    욱일기 논란에도 참고할 만한 내용 같네요. 슈바스티카를 비롯한 나치 잔재 청산은 일본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특수 사례라고 보는데 이걸 납득 못하는 사람들이 많죠. 아니 하다못해 파스케스는 왜 금지가 아닌지 생각을 해 봤을까 싶습니다. 오히려 원조라면 원존데...
  • Oso 2015/10/13 10:43 #

    좋은 질문이군요. 관련 분석이 있나 궁금해집니다.
  • 2015/10/13 09:35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Oso 2015/10/13 10:44 #

    "인류의 비극도 필요에 따라 선택"

    정곡이네요 ㅋ. 역사인식을 강요하는 자들에게 백번 반복해야될 듯 합니다.
  • 지나가던과객 2015/10/13 11:15 # 삭제

    친일파가 꼭대기에 있는 나라에서 당연한 일이죠!! (친일파가 청산 안됬다는 나라에서 왜 반일감정이 심한지는 의문입니다만.....)

    그리고 유럽쪽은 역사적으로 서로 크게 한 방 먹여주고, 크게 한 방 맞고 그런 사이였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맞은 상태인데 거기서 비롯된 감정이 덜 풀린 상태라서 그런게 아니겠습니까?
  • 백범 2015/10/13 12:11 #

    심지어는 유력 야당과 야당성향 지식인들도 상당수가 친일파 자식들이라지요? 총독부의 개노릇을 하던 순사, 경찰관, 일본군인 헌병오장, 면서기의 자식들... ㅋ
  • 제생각 2015/10/13 13:42 # 삭제

    일반적인 상황이 사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피해자도 사과하지 않는 걸
    당연히 여기게 되는 건 아닐겁니다.

    일본과 동북아시아의 문제는 사실 사과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 인식의 문제 입니다.
    모두가 역사에서 어두운부분은 가리려 하고 밝은 부분은 과장하려 들지만
    어두운 부분들 밝게 만드려 든다면 피해자 입장에서 영원히 불쾌해 할 겁니다.
    (일본이 동북아시아를 발전 시켰다고 주장하며 위안부는 돈을 벌려고 온 사람이라는 주장등)

    일반적으로 이러이러하고 상황상 사죄 했더니 일이 더 커지더라 그러니
    사과 같은거 하지말고 지냈어야 했다 같은 이야긴 끼워 맞추기 식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부분은 역사 인식이겠죠. 사과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 Oso 2015/10/13 20:11 #

    피해자라 해봤자 그 때 있었던 사람들이나 불쾌할 수 있지 우리가 흥분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점이네요.
  • ㅇㅇ 2015/10/13 20:31 # 삭제

    위안부에 돈벌려고 왔던 사람이 없는건 아니죠 당대 신문에도 실려있던 내용이구요

    그리고 한국이 일본에 바라는건 종군위안부 존재의 인정 자체가 아니라 일명 "소녀사냥"이라 일컷는 조직적인 강제연행 여부인데 이건 완전 판타지 소설입니다 -_-;;그리고 이건 다른곳도 아니라 과거 노태우 정부시절때 정부의 반복된 조사를 통해 입증된 사실입니다.
    여기서부터 한국측의 일방적인 주장은 다분히 핀트가 어긋났죠. 물론 위안부에 강제성이 없던건 아니고 분명히 감금 인신매매적인 측면이 존재했었습니다 그렇다고 정신대 처럼 국가에서 징발하거나 그런적은 절대 불가능하고요. 물론 매우 희귀한 케이스로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탈출시도하다가 붙잡혀서 끌려갔다 하는 분이 단한분 계셨구요 그외에는 시대상으론 점령도 안된곳에 끌려갔다니 북한주장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등 들어볼 가치도 없는것들 뿐이죠.
    진위를 알고 나면 이것만한 코메디 대국민 사기극이 없습니다 ㅈㄷㅎ의 언플과 반일여론의 영합한 결과죠.
  • ㅇㅇ 2015/10/13 20:34 # 삭제

    다른데 가볼필요도 없이 이미 역갤 네임드중 한분인 생활잔차님이 전부 정리해 주셨습니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history&no=1518068&page=1&search_pos=-1492032&s_type=search_name&s_keyword=%EC%9E%94%EC%B0%A8%EC%83%9D%ED%99%9C%EC%9A%A9
  • ㅇㅇ 2015/10/13 20:49 # 삭제

    위안부라는 개념 자체도 뜬금없이 2차대전 도중에 등장한게 아니고 이미 중일전쟁 시기 화북지역에서 조선인들을 주축으로 일본군을 상대로한 마약 매매나 위안소 같은 매춘업이 횡행했었습니다. 한국사람들 대부분은 여기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듯 보이네요 http://blog.naver.com/athina/220021395100
  • Graphite 2015/10/13 14:25 #

    반성즙 간만에 보는군요 ㅋㅋㅋ
  • Oso 2015/10/13 20:11 #

    ㅋㅋㅋㅋㅋ
  • 零丁洋 2015/10/13 19:16 #

    확실히 일본의 대응은 일반적입니다. 반면에 독일은 정말 대단합니다. 시민의 도덕적 성숙이나 너무 파멸적인 전쟁을 야기했다는 이유도 있겠으나 전쟁을 주도한 나치가 독일의 핵심주류가 아니었기에 쉽게 사회에서 도려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간기 독일의 모습과 비교하면 이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 ㅇㅇ 2015/10/13 20:20 # 삭제

    독일도 알게 모르게 합리화 많이 했죠 가령 SS같은 골수 나치들만 죄인이고 일반 군인들은 죄가 없다고 모르쇠거나 전후 서독군에 그대로 높은 자리 잡고있던 양반이 나중에 알고보니 전범이였더라라는 냉전때문에 많이 가려진 측면이 있죠. 독일 국방군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와있을껍니다.
  • 心月 2015/10/13 21:23 #

    레이건이랑 비트부르크의 SS 대원 공동묘지 참배한 헬무트 콜이 무안해질 지경.ㄳ
  • 붕어 2015/10/14 00:15 # 삭제

    그 대단함안엔 당장 분노에 불타는 동쪽나라들이 바로 이웃에 있었단 점이 큽니다. 독일통일조차도 소련과 폴란드 둘중 하나만 반대했어도 영원히 못했을겁니다.

    근데 도리어 좋던싫던 징집되서 싸운 모든 군인들을 무시하는 현 독일의 태도가 과연 좋은지는 또 모르겠습니다. 워낙 흑역사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건 좀 심한 일일수 있으니까요.
  • ㅇㅇ 2015/10/13 20:41 # 삭제

    한국에는 아직도 실제로 일제=나치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이있죠 실제론 완전히 판이한 성격인데도 말이죠. 만에하나 그게 사실이라 치더라도 거기에 가장 협력적이였던 따까리가 조선이였다는건 알더라도 입밖에 꺼내길 거부하죠.
  • 존다리안 2015/10/13 21:27 #

    그러고 보니 일제를 아우슈비츠와 비슷하다는 지적에 반박한 한 일본 만화작가(본인이 맞는지는 의문스럽지만....)
    가 그 소리 때문에 한국에서 우익으로 몰렸지요.(..........)
    국내외에서도 유명한 작품의 작가인데 이 소리 때문에 한국내에서도 동인들 사이에서 한창 흥하던 그 작품의
    팬들이 많이 죽었지요. ㅜㅜ
  • Oso 2015/10/14 07:16 #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왜 초청받지 못했나 생각해보면 간단하죠.
  • 心月 2015/10/13 21:36 #

    서독의 과거사 청산(?)이 그 나름대로 불철저했음에도 주변 제국과 화해할 수 있었던 배경엔 전후 재건을 마치고, 유럽 통합 및 서구권의 단결이란 새로운 공통된 과제앞에서 타협하려는 냉전초기 정세의 현실적 요인이 작용했기에 가능했던거죠. 이스라엘이 카메룬이나 나미비아처럼 듣보잡(...) 피지배 식민국가들과 비슷한 위상의 국격이었더라면 그만큼의 사죄를 받아냈을지 의문입니다.
  • Oso 2015/10/14 07:17 #

    동의하는 바입니다.
  • 2015/10/13 21:4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10/14 07: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ㅇㅇ 2015/10/14 01:03 # 삭제

    정말 재밌는 글입니다ㅎㅎ 잘 읽었아요
  • Oso 2015/10/14 07:16 #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5/10/16 20:0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ㅂㅈㅇ 2015/10/17 15:08 # 삭제

    근데 사과는 둘째치더라도 아직도 일본에선 극우들이 빼액거리면서 활개치는데 제대로 된 화해가 가능한지 의문이네요.
  • 2015/10/17 20:3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ynaki 2015/10/18 04:58 # 삭제

    외교는 감정으로 하는게 아닌데 너무 답답합니다.
    근데 어차피 중국이 조만간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깽판치기 시작하면
    알아서 화해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ㅇㅇ 2015/10/18 12:14 # 삭제

    한일관계를 찬찬히 보면 90년대쯤 극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상당히 많았던거 같습니다. 그때 한국이 양보좀 하고 유감표명 (솔직히 무라야마쯤 되면 유감보단 사과에 가까운거 같은데) 받아들였으면 지금같은 관계는 아니었겠죠.

    좀 답답합니다 그런거볼때
  • 닭그네반일 2015/10/28 10:49 # 삭제

    닭여왕이 일본에 세게 나가는 건 2가지라고 봅니다. 일단, 친일파 딸이라서 더 세게 나가는 거겠고요. 다음으론, 속이 좁아서 한번 삐치면 오래가서입니다.
    베트남이 미국,한국 등에 별로 베트남전 문제 삼지 않은 걸 보고 든 생각인데요. 한국,중국은 일본에게 털리기만 해서, 더더욱 사과를 요구하는 듯 합니다. 미국은 일본,독일을 털었으니 사과 따위 안 받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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